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 안도현

Posted by sunsetblue - : 2009/02/02 10:29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 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거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를 씹으며 입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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