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땅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땅은 지구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우주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허공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허공은...
허공은 그저 빌려 온 이름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해와 달이며 별과 지구가 있으니
결단코 없다고만은 할 수 없으니 분명 의지할 데가 있어야 합니다.
허공을 찾아 나선 사람이 종일 다녀도 찾을 길이 없다가
문득 새 소리를 듣고서는 허공이 예 있음을 알았습니다.
어떤 선지식은 새벽 교회 종소리를 듣고,
천 년 전의 또 어떤 선사는 빗질을 하다가
대나무에 기왓장 부스러기가 부딪쳐 나는 소리를 듣고,
허공이 내 집안임을 깨쳐 알았다고 합니다.
바로 이 자리가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새벽별을 보고 정각을 이룬 깨침의 자리이며
허공이 의지해야 할 자리입니다.
그러면 그 깨침의 자리가 무엇이냐 하면,
실로 이 우주는 거대한 생명체인 동시에
하나인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과
너와 나, 삼라만상 천지만물 어느 것 하나
佛性(불성)이 없는 게 없다는 진리입니다.
이 불성은 식물, 곤충, 동물의 지성에서
우리들 인간의 마음까지를 다 아우르는 모든 마음의 본원입니다.
화엄경의 사구게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若人慾了知(약인욕요지) 三世一切佛(삼세일체불)
應觀法界性(응관법계성)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만약 어떤 사람이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싶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 일체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뚫어보아야 할 것이다.’
一切唯心造,
이 다섯 글자가 바로 화엄경의 근본 종지입니다.
이 세상 만물이 일체 마음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깁니다.
일체유심조는 다르게 표현해 여래일원의 세계를 말합니다.
마치 사람의 손가락이 손가락 그것에서 보면
엄지와 검지, 중지 등이 대립해 있는 듯하지만
인간의 목숨 그것에서 보면 엄지와 검지도 모두
자기의 그것이고 대립이 없습니다.
하나하나의 손가락 같은 중생들도
모두 여래의 자기실현이요, 자기표현이며, 자기 활동인 것입니다.
여기에 지금 여래가 나에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 깨달음이요,
즉신성불의 도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廻光返造!
우리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의식하고 판단하고 또 계획하며
결심하고 무슨 일을 추진하더라도 그 마음의 가장 깊숙한 안쪽에는
태연자약하고 넓기 그지없는 우주의 한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 일입니다.
그 한마음은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섬광처럼 지혜가 번득이며 샘물처럼 따스한 자비가 솟구치는
영각성의 마음이며 바로 그것이 진실로 참된 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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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추스리는 시간.
을 가져야 될것같다.
이미 나는 무너진 탑비
더 피하지 않고 숨지 않고
화두를 품고
다시 날 쌓아가고 싶다.